54회 황인무 동문 장군 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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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4 곽봉호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 댓글 0건 조회 3,726회 작성일 2004-11-24 13:51본문
▲ 황인무씨
그가 태어난 옥천읍 매화리 구덕재에서는 고개를 넘고 동안리를 거쳐 죽향초등학교를 다녔다. 다닐 때마다 거쳤던 곳이 정지용 시인이 노래했던
실개천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밟고 다닌 개천이 정지용 시인이 노래했던 실개천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어린 눈으로 볼 때는 당시 실개천
주변에는 별로 집이 없어서였는지 상당히 넓어 보였어요.”
그중에서도 구읍 풀빵집을 그는 기억한다. 구읍 네거리에 있던 풀빵집. 수업이 끝난 후 풀빵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사먹던 그 재미가 제법
좋았단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안고 있어서일까? 그는 서울 등지에서 고향 모임에 나가 노래방을 가곤 할 때 정지용 시인이 쓰고
이동원·박인수가 부른 `향수'와 `내고향 충청도'를 부른다. 직접 그의 노래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가 부르는 `향수' 노래라면 고향에 대한
찐한 애정은 물론 감정까지 묻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육군 대령에서 별 하나인 준장, 장군으로 진급한 날 황인무(50)씨를 먼저 축하해 준 것은 그를 아끼고, 옆에서 지켜봐 왔던 옥천중학교
20회 동문들이었다. 곽봉호씨가 서울에서 인터넷을 통해 그의 진급 사실을 알렸고, 옥천 친구들도 축하를 보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를 평생 잊지 못하게 되어 있다. 모교인 옥천중학교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체육관 앞에 이제는 커다랗게
자란 백일홍. 이제 등교하는 후배들과 학교를 찾는 동문들을 반겨주는 이 나무는 지난 75년 그의 아버지가 그의 대전고등학교 수석입학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심은 것이다. 모교에 심은 것이 30년. 심을 당시에도 꽤 큰 나무였던 걸로 기억하는 이 백일홍의 나이는 실제 그의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이 나무가 있어 그는 고향을 방문할 때면 모교를 떠올리곤 한다. 아들 둘과 함께 모교의 백일홍 나무를 찾아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육군사관학교 3학년때 제가 처음 매화리로 인사를 오게 되었는데 자전거로 마중을 나왔더라구요. 자전거 뒷꽁무니에 매달려 매화리를 갔죠.
연애시절 옥천중학교에 가서 백일홍 나무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남편 고향이라 그런지 참 의미가 깊어요.”
황인무 준장이 11일 고향에 방문했을 때 함께 온 부인 조남희(48)씨도 고향 옥천에 대한 느낌을 한 마디 거든다.
그 나무는 그에게 정신적 지주였다. 그의 집이 서울로 이사간 때가 지난 84년이지만 아직도 고향 매화리엔 친척들이 살고 있어 명절 때면
소주 한 잔 걸치며 옛날 얘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었다. 우울하거나, 마음이 공허할 때면 고향 생각을 하며 달랬다. 그는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를 택했다. 육사를 택하고 그가 군인이 된 것은 아버지 황윤술씨의 주문 때문일 지도 모를 일이다.
12남매 중 열한 번째인 그의 이름을 인무(仁武)라고 지었던 까닭은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해서였다는데, 이름그대로 `어진 군인, 인을
베푸는 군인'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소망이 담겨 있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어진 군인이 되라'고 그에게 항상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은 그가 육사로 진로를 택하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중학교 졸업 후 대전고에 시험봤다가 낙방했던 일, 재수학원에 다니겠다고 매화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잘 정비되어 있지도 않았던 길을 오다가 한
번은 장야리 개천으로 자전거와 함께 곤두박질쳤던 일, 옷이 흠뻑 젖은 채로 학원에 가서 하루 종일 젖은 상태에서 생활했던 일, 결국 대전
기차통학 생활 2개월만에 대전에서 자취했던 일, 재수를 통해 옥천중학교 학생으로서는 없었던 대전고 수석입학했던 일,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던 79년 마침 10.26사태와 12.12 게엄선포 등으로 제대로 고향에도 오지 못했던 일들을 그는 풀어냈다.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김대중 정권의 말기인 지난 2002년 10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그는 국방정책을 조정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가 남북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평화적 해결을 통한 통일 달성'이 그가 말한 정책이다. 그 말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결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자주적 외교노선을 말한 부분과 일치한다. 그런 그에게서 군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을
건넸다. 그 말이 거슬렸을까? 그에게서 돌아온 말.
“군인은 군복을 입었을 때와 군복을 입지 않았을 때가 다릅니다. 조금있으면 야전으로 나가게 될텐데 그때는 군인 냄새가 나겠죠.”
옥천 사람, 어진 군인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황인무 준장에게서 고향 옥천의 냄새가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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